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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중심(中心)에 대한 단상
작성자 관** 등록일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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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이든 중심(中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개인의 집이든 마을이든 고을이든 다를 바 없다. 집의 경우에는 성주신(城主神)을 모시는 곳이 중심이다. 대들보가 있는 곳이다. 아직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을의 경우에는 당(堂)집이 중심이다.

 

우리 영등포를 포함하는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당집을 흔히 부군당(府君堂)이라고 부른다.

당산동(堂山洞)에 가보면 아직도 부근당이 남아 있는데 옛날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곳이 당산동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산(堂山)이라는 이름도 당집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영등포의 중심은 어디일까? 중심이 있기나 한 것일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중심을 신(神)들과 교통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통 중심은 산에 있다고 생각했다. 신들은 하늘에 있게 마련인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 산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중심산(中心山)이라는 것이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태백산(太伯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진산(鎭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중국으로부터 풍수설(風水說)이 들어올 즈음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풍수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이 신라말이고, 풍수설과 진산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관련성을 가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 아마도 그 때쯤이 아닌가 싶다.

진산이란 고을의 주산(主山)으로 고을을 지키고 보호하여 주는 산을 일컫는 말이다.

진산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나라나 고을의 경우 중심산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었던 것 같다. 나라나 고을에서 차지하는 우리 고유 종교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진산이 중심산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된다.

 

우리 영등포가 속해 있던 고을은 시대마다 이름은 같지 않지만 1910년 시흥군청(始興郡廳)을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永登浦里)로 옮겨오기 전까지 고을의 관아(官衙)는 지금의 시흥동(始興洞)에 있었다. 또한 그러한 까닭에 고을의 중심산이나 진산은 관아가 있던 시흥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고을의 중심산은 아마도 검지산(黔芝山)이었던 같다.

 

검지산에 있는 용추(龍湫)에서 옛날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용추를 지금은 한우물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을의 진산은 애초에는 삼막사(三邈寺)가 있는 삼성산(三聖山)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검지산으로 바뀌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검지산으로 바뀐다. 다른 고을에서와는 달리 고을의 중심산이 진산의 역할을 겸하게 된 것이다. 진산과 중심산이 일치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어쨌든 검지산은 영등포가 속한 고을의 중심산이자 진산이라는 지위를 1910년 시흥군청(始興郡廳)을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永登浦里)로 옮겨온 뒤에도 1914년 시흥군이 안산군(安山郡)과 과천군(果川郡)을 통합한 뒤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뒤 진산에 대한 별다른 논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검지산이 영등포에서 그러한 지위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36년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지금의 서울시에 편입된 이후 영등포와 검지산은 별개의 지역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영등포는 기초자치단체로서 주민들이 직접 구청장과 구의회의원을 선출하는 등 독자적인 고을의 외형을 갖추었다. 그러나 독자적인 외형만 갖추었다고 해서 독자적인 고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자적인 문화가 갖추어져야 독자적인 고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자적인 문화의 핵심에는 고을의 중심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기준으로 하여 공공건물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이 재배치될 수 있고, 고을 구성원들의 동선이 정해지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을치고 그와 같은 개념이 없는 고을은 없다.

그러나 영등포는 어떠한가? 공공건물을 비롯한 건물들이 어떻게 배치되었나? 이런 중구난방이 어디 있겠나 싶다. 중심의 개념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고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중심에 모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영등포구민들은 어디에 모여야 할지 모른다. 그래 하도 답답해서 영등포구민들께 물어본다.

영등포구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도대체 영등포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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