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금천구(衿川區)에 검지산(黔芝山)이 있다. 검지산은 조선시대 후기 지금의 영등포(永登浦)지역이 속해 있던 금천현(衿川縣)의 진산(鎭山)이 된 산이다. 진산이 되기 전 검지산은 보통 호암산(虎巖山)으로 지칭되었다. 호암산의 호암(虎巖)은 ‘범바위’의 차자표기로 생각된다. 호(虎)의 훈이 ‘범’이고, 암(巖)의 훈이 ‘바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을 보면 호암(虎巖)을 호암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산에 범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범바위’는 과연 범과 같이 생긴 바위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바위의 모양이 범처럼 생겼다한들 그것이 고양이처럼 보일 수도 있고, 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족제비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범처럼 생겼다고 보아 ‘범바위’라고 했겠는가? 당연히 바위의 모양이 범처럼 생겨 ‘범바위’라고 부른 게 아니라 바위의 이름인 ‘범바위’에서 범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와 같은 민간어원설이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범바위’의 ‘범’은 무엇에서 연유하는 말인가? ‘범바위’의 ‘범’은 ‘버미’에서 온 말일 수 있다. ‘버미’가 ‘범이’가 되고 ‘범이’에서 ‘이’가 탈락되면 ‘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미’는 ‘버뫼’에서 온 말일 수 있다. 참외를 흔히 ‘참이’로 발음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두 번째 음절에서 ‘외’는 보통 ‘이’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범’이 ‘버뫼’에서 온 말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버뫼’는 어떤 뜻을 갖는 말인가? ‘버뫼’라고 불리는 산을 뜻하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지명이 대체로 일정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을 앞에 두고 일정지역의 일반적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이름이 뒤에 결합하여 형성된다고 할 때 ‘버뫼’의 ‘버’는 ‘버뫼’를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이고, ‘버뫼’의 ‘뫼’는 ‘버뫼’가 갖는 일반적인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이름으로 보아야 하는데 산(山)을 뜻하는 우리말이 뫼이고 보면 ‘버뫼’의 ‘뫼’는 산이라는 일반적 속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까닭이다. ‘버뫼’의 ‘뫼’가 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인 ‘버’는 어떤 뜻을 갖는 말인가? 일정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은 보통은 방위를 지칭하는 이름들이다. 북면(北面) 동면(東面) 등의 이름이 그렇고, 상북면(上北面) 하북면(下北面) 등의 이름이 그렇다. 그러므로 ‘바뫼’의 ‘바’ 또한 방위를 지칭하는 이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 때 고려해야 될 사항은 서쪽을 뜻하는 우리말이 ‘발’이라는 사실이다. ‘발’이 외파(外破)되면 ‘바라’가 되는데 이들에서 ‘버’ ‘바’ ‘배’ ‘발’ ‘벌’ ‘바리’ 등과 같은 말이 파생되었다. 이들이 서쪽을 뜻하는 말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志) 지리(地理)>에 등장하는 고구려(高句麗) 지명 도서현(道西縣)을 통해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도서현(道西縣)은 도분현(都盆縣)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이정룡(李正龍, 1952~ ) 박사는 2002년 출간한『한국(韓國) 고지명(古地名) 차자표기(借字表記) 연구(硏究)』에서 도서(道西)의 서(西)와 도분(都盆)의 분(盆)이 서로 대응하며, 따라서 서(西)를 지칭하는 우리말이 분(盆)을 뜻하는 우리말로 나타난 경우라고 보고 분(盆)을 뜻하는 우리말을 그릇의 이름인 바리 버리 종바리 종발 등의 예를 들어 ‘바리’ ‘발’ 등으로 재구(再構)하였다. 곧 ‘바리’ ‘발’ 등이 서쪽을 뜻하는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고 할 때 ‘바뫼’의 ‘바’는 서쪽을 뜻하는 우리말 ‘발’에서 ‘ㄹ’이 탈락하여 생겨난 말로 보아 틀림이 없다고 생각되며, 그러므로 ‘바뫼’는 서쪽에 위치한 산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은 <<동국여지지>>나 <<여지도서>>에서 호암산을 관악산(冠岳山)의 서쪽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또 실제로 지금은 검지산(黔芝山)으로 부르는 호암산이 삼성산(三聖山)과 함께 관악산의 서쪽 가지에 해당하는 산이라는 점이 입증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버뫼’가 그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국여지지>>나 <<여지도서>>의 기록에도 드러나듯 관악산의 서쪽에 위치하는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악산을 중심으로 보아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고 할 때 호암(虎巖)은 서쪽에 위치한 산에 있는 바위를 뜻하겠거니와 그렇다고 할 때 호암산이 호암산(虎巖山)으로 불리게 된 까닭 또한 자명해진다. 서쪽에 위치한 산에 사람의 이목을 끄는 바위가 있어 서쪽에 위치한 산에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범바위’라고 불리게 되고, ‘범바위’가 있는 산 또한 본래 산 이름 대신에 급기야는 ‘범바위’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범바위’산의 ‘범’을 짐승인 범으로 오해하여 호암산(虎巖山)으로 차자표기되고, 이를 한자음으로 읽게 되면서 호암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