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기전읍지(畿甸邑誌)>>(1895) <시흥현읍지여사례성책(始興縣邑誌與事例成冊)>의 사례(事例)에 나와 있는 조선 후기 시흥현의 군인수(軍人數)와 군기(軍器)이다. 1. 군인수(군총(軍摠)) *양향보(良餉保 : 양인 신분인 향보(餉保 : 군보(軍保 : 현역에 복무하지 아니하고 정군(正軍)이 현역에 복무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장정(壯丁)을 지칭하는 말이다. 장정 한 사람이 매월 면포(綿布) 1필씩을 바쳤다. 보인(保人) 봉족(奉足)이라고도 한다.))가 250명이다. *사향보(私餉保 : 노비 신분인 향보)가 330명이다. *포보(砲保 :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 : 조선 후기 중앙군영의 하나로 훈국(訓局)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중에 일본의 조총 위력을 목격하고 포수 양성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임시기구로 설치된 뒤 점차 상설기구로 변모되었다.)을 운영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보(軍保) 하나이다. 네 사람 중의 하나는 군역에 복무하고 세 사람은 그 보인(保人)으로 베나 쌀을 바쳤다.)가 41명이다. 임술(壬戌, 1862)년에 나누어 다시 정하여 동포(洞布 : 동네에서 공동(共同)으로 바치던 군포(軍布))를 마련하였다. *정초군(精抄軍 : 조선시대 대궐 숙위(宿衛)를 맡아보았던 군대)이 169명이다. *속오군(束伍軍 : 조선 후기의 지방군으로 진관(鎭管) 중심으로 각 마을의 사정에 따라 양인(良人) 과 천인(賤人)으로 편성되었고, 지휘권과 조련권이 각 영장(營將)에게 있었다.)이 213명이다. 무포군(無布軍)이다. 2. 군기(軍器) *교자궁(交子弓 : 저리갈나무(沮里加乙木)로 만든 목궁(木弓)의 한 종류)가 10부(部)이다. *화약(火藥)이 50근(斤)이다. *철환(鐵丸)이 1,100개(箇)이다. 깨어져 상했다. *화승(火繩 : 화약 심지의 불을 붙게 하는 데 쓰는 노끈)이 50사리(沙里)이다. *오방신기(五方神旗)가 5면(面)이다. 모두 죽엽(竹葉 : 댓잎)이다. *화약철환(火藥鐵丸)이 궤 가득 1좌(坐)이다. *인신궤(印信?)가 1좌(坐)이다. *융총(戎銃)이 120자루(병(柄))이다. *환도(還刀)가 200자루(柄)이다. *삼혈총(三穴銃 : 삼안총(三眼銃)이라고도 하며, 한손잡이에 3개의 총신을 연결시켜 한번에 3발을 쏠 수 있게 하였다.)이 2자루이다. *장창(長槍 : 전체(全體)의 길이 4m 안팎의 긴 창)이 120자루이다. 깨어져 상했다. *동고(?鼓)가 3부(部)이다. 파손되어 없다. *장전(長箭)이 30부(浮 : 1부는 화살 100개 한 묶음)이다. *아기살(편전(片箭)) : 촉을 제거하고 포백척(布帛尺 : 약 46cm)으로 8촌(寸))이 30부(浮)이다. *거마적(拒馬賊 : 거마작(拒馬?)으로 적의 기병이 쳐 들어오지 못하게 설치하는 이동용 방책(防柵))이 80부(部)이다. 파손되어 있다. *철촉롱(鐵燭籠)이 2쌍(雙)이다. 파손되어 없다. |